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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깻잎 일기 #1

한국인 회사 동료로부터 깻잎 씨앗과 고추 씨앗을 선물 받았다.

깻잎은 못 먹어본지 1년이 넘었고 고추는 마트에서 애용하는 편이라, 깻잎과 고추는 정말 쓸모있는 선물이었다.

오래 전부터 '과일이나 채소 재배해보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반드시 잘 키워서 맛있게 먹겠습니다."


2월 24일 (일기 시작)

깻잎씨와 고추씨를 뿌렸다. 네모난 반찬통에 젖은 냅킨을 한 장 깔고 그 위에 씨앗을 흩어 놓았다.

전문용어로 이렇게 발아시키는 방법을 물발아 혹은 솜발아라고 한다.

반찬통은 랩으로 가볍게 덮어 습도가 유지되도록 했다. 그리고 랩에 구멍을 송송 뚫어 씨앗들의 질식사에도 대비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씨앗을 넉넉히 뿌렸는데, 이 중에 얼마나 발아에 성공할지 모르겠다.




2월 27일 (3일째)

깻잎씨에서는 예상보다 빨리 변화가 일어났다. 갈색 껍질을 뚫고 하얀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뿌리였다.

아직은 줄기나 새싹이나 다 한 몸이니 뿌리, 줄기, 싹, 손, 발, 얼굴 등등 뭐라고 표현하든 상관없을 것 같다.

몇 달 동안 어둡고 컴컴한 통 안에서 죽은 듯이 지내다가 알맞은 환경임을 감지하고 싹을 틔우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생명의 신비란... 하면서도 속으로는 문득 영화 에일리언이 떠올랐다.


3월 1일 (5일 경과)

고추씨는 아직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반면, 깻잎씨는 뿌리를 쏙쏙 내밀고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씨앗들이 발아에 성공해서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걱정이다.

출근하기 전에 계란판과 빈 종이상자에 흙(Aussaaterde)을 깔고, 씨앗 몇 개를 핀셋으로 집어 옮겨주었다.

뿌리 주변에 곰팡이로 추정되는 하얀 솜같은 것들이 달라붙어 있어서 옮기는 과정에서 흐르는 물로 대충 씻어주었다.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3월 2일 (6일 경과)

씨앗들이 냅킨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아내와 집에 있는 각종 화분들을 총동원해 최대한 옮겨 심어주기로 했다.


이미 많이 자란 녀석들은 냅킨 안쪽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남은 씨앗들은 대충 털어서 놓거나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잘 자라면 나중에 분양이라도 해야겠다.


오후에는 만하임과 비슬로흐에 있는 화원에 다녀왔다. 깻잎이 더 크게 자랄 때를 대비해 나중에 옮겨 심을 흙(Universalerde)과 화분을 샀다.

깻잎은 뿌리가 길게 자라기 때문에 최소 30cm 깊이 이상 되는 화분에 심는 것이 좋다고 해서 큰 화분을 샀다.

화분 값이 40유로나 들었다. 돈을 많이 안 들이고도 깻잎을 실컷 먹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러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고추씨는 가망이 없는 것 같아 폐기처분했다. (찾아보니 먼저 물로 불려주는 작업을 해야하는 것 같다)


3월 5일 (9일 경과)

깻잎 뿌리가 흙 속에 자리를 잡았는지 줄기가 곧게 서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서 씨앗을 2-3개씩 뭉쳐서 뿌리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서는 하나도 죽지 않고 2-3개의 줄기가 나왔다.

깻잎이 키우기 쉬운 편이라던데 그 말이 맞나보다.


하지만 깻잎이 커가는 과정에서 병충해나 관리부족으로 인해 수확도 하기 전에 깻잎이 죽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깻잎을 수확하는 그날까지 낙오자가 나오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겠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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