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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책 리뷰] 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및 배경

 한 줄로 요약하자면, 파피용은 멸망해 가는 지구를 탈출하는 인류의 희망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중심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도시 규모의 '거대한' 크기를 가진 우주선 '파피용'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이다.

 우주선은 제 2의 지구를 건설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제작된다. 그리고 비밀리에 우주선에 탈 사람들이 선발된다. 이들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어야 하며, 폭력적인 기질이 없어야 한다. 타인의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 의지와 사회의 질서를 존중할 줄 알아야한다. 이렇게 선발된 인원은 무려 14만4천명. 14만4천이라는 숫자는 작가가 그냥 아무렇게나 정한 숫자가 아니었다.

기독교 신약 성경 요한계시록 7장에는 12지파에 12000명씩 144000명이 구원받는다는 내용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주선은 빛의 힘만을 이용해 시속 260만km로 1000년 이상을 날아갈 수 있게 설계되었다. 이 우주선 안에서 인류는 세대를 거듭하며 지구와의 역사는 단절된 새로운 인류으로 번식해 나간다. 그러나 10세기가 넘는 긴 여정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선 안의 질병이나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고, 제2의 지구에 도착할 때 쯤에는 단 6명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중 단 2명만이 제 2의 지구에 무사히 착륙한다. 이 행성에는 공룡들로 보이는 동물들만이 살고 있다. 이 미지의 행성, 제 2의 지구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2명의 이름은 아담과 이브이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인류가 천년을 날아 '먼 미래'에 도착한 곳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먼 과거'라는 아이러니한 결말을 남기고 말이다.

 이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인공의 이름이 '이브'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두 개의 고리가 형성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보니 책을 읽는 동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 제니퍼 로렌스가 등장하는 패신저스(2016),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어리언 커버넌트(2017)와 마션(2015)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몇몇 영화들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파피용이 발간된 년도는 2006년으로, 방금 나열한 영화들보다 훨씬 더 앞서지만, 책보다 저 영화들을 먼저 접한 나에게는 책이 영화보다 더 진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읽는 동안 몰입감은 별로 없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라든지, 문맥간의 개연성에는 좀 빈틈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대신, 작가가 이런 엄청난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이야기를 끝맺을지에 더 관심이 쏠렸다. 어쩌면 이런 빈틈조차도 작가가 의도한 부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

 파피용에는 3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이브'라는 이름의 우주 과학자, 우주선 기술자이다. 그는 지구를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탈출에 필요한 우주선을 설계한다. 과학자들을 포함해 온 세상이 모두 그를 비웃을 때도 그는 자기확신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는 14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태우고도 1000년동안 시속 260만km/h로 날 수 있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우주선, 파피용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다. 파피용은 불어로 ‘나비’ 혹은 ‘나방’이라는 뜻이다.


 두번째는 '엘리자베트'라는 항해사이다. 원래는 요트 세계 챔피언이었으나, 이브가 몰던 차와 교통사고가 나면서 하반신 불구의 신세가 된다. 그녀는 탐험가이자, 리더이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고, 고통을 견뎌낼 줄 알며 끊임없이 도전한다. 사고 이후 방황하는 시기를 겪지만, 결국에는 인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우주선 파피용의 조종사가 된다.


 세번째는 '맥 나마라'라는 억만장자인데,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맥 나마라는 이브의 지구 탈출 계획을 듣고 나서, 그에게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는 자본가이다. 파피용을 완성시키기 위해 모든 물질적 지원을 쏟아붓는다. 그는 파피용을 완성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마지막 희망'이라고 이름 짓는다.


 작가는 인류의 위대한 발견, 혹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3가지 인물의 유형을 기술자, 탐험가, 자본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같은 꿈을 꾸는 세 유형의 인물들이 모인다면, 그들이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라면, 어떠한 상상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콜럼버스에게도 그 배경에는 대양을 횡단할 수 있는 선박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발전이 있었을 것이고,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의 금전적 지원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론 머스크가 그러한 3가지를 다 갖춘 인물이 아닌가 싶다.


 반면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정치인, 군인, 종교인들은 어리석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그들이 없는 다소 무정부주의적인 사회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은 아닐지, 우리에게 슬쩍 상상의 실마리를 던져보는 것 같다.

"제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폭력, 신앙 이 세 가지야말로 대표적인 의존 형태지요"


구성

 소설은 총 3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은 이브, 엘리자베트, 맥 나마라가 우주선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 질투심 등이 그려진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되지.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의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2장은 우주를 항해하는 동안, 우주선 안에서의 인간의 모습이다. 14만명의 선발된 인간들이 처음에는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첫 번째 범죄가 발생하고, 그 것을 계기로 권력구조가 생기고, 정치와 종교, 전쟁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가 현재 상태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소. 인간은 지구에 있을 땐 우주로 떠나고 싶어하지. 그리고 우주에 있으면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고"


 3장은 1000년 후 그 많은 인류가 우주선 안에서의 전쟁이나 질병으로 모두 멸망하고, 6명만 남은 상태다. 그 중 유일하게 남은 여자 1명과 그녀에게 선택된 남자 1명만이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다. 그들은 어딘가 어리숙하고,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다른 행성에서 인류를 다시 태어나게 할까?>라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를 풀었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어떻게 한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자신이 답답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어도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일까. 도대체 그 본성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렇기에 인간의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일까.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해답은 과거에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좋은 점들을 되찾으려고 해야한다는 것일까.



파피용
국내도서
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 전미연역
출판 : 열린책들 200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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