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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슈베칭엔에서 봄을 맞이하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았다. 2월 한 달 간 누스로흐(Nußloch)의 임시 숙소에 머물면서 부동산 앱과 지역 코디네이터인 헬렌 통해 여기 저기 알아보았으나, 실제로 집을 방문해 볼 수 있었던 건 겨우 3군데 밖에 없었다. 그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한 곳 마저도 4월부터 입주가 가능하다고 하니, 우리에겐 집을 구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로부터 임시 숙소를 연장 받았고, 한 달의 여유가 더 주어졌다. 지난 한 달 동안 머물며 정든 누스로흐 숙소에서 계속 지내고 싶었지만, 해외 이주를 도와주는 중간 업체의 사정으로 인하여 3월부터는 우리가 살던 방을 비워줘야 했다. 추운 겨울 낯선 이 곳에서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던 요람과도 같았는데.. 아쉽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여정에 설레기도 했다.



관련 포스트: [일상] 독일 이민 - 첫 임시 숙소, 첫 하이델베르크



임시 숙소에 대한 지원을 연장 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 이었지만, 그새 불어난 짐 가방들을 꾸역꾸역 차에 한 가득 싣고 한 번 더 이사를 가야한다는 사실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새롭게 지정 받은 숙소가 너무나도 형편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또 다른 숙소를 배정 받을 때 까지 첫 보름 동안은 두 군데 호텔에서 묵었으므로 한 동안은 계속 차에 짐을 싣고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지내보면서 마을 지리도 익히고, 동네마다 사람 사는 모습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는 잘 된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도 예전에 잠시 살았던 동네를 지날 때면 그 때 그 추억들이 떠오른다.


독일에 온 지 한 달 반 째 되는 3월 중순. 우리의 마지막 임시 숙소가 될 슈베칭엔(Schwetzingen)에서 우리는 보름 간 머물렀다.



낯설기만 한 임시숙소로 가는 길


누슬로흐와는 다른 느낌의 숙소.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아늑했다.


이 집에서 머물면서 내가 유독 좋아했던 것은 아침 저녁으로 발코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었다. 신혼 때는 하늘만 봐도 웃음이 난다던데. 신혼과도 같은 우리의 겨울.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상쾌한 겨울 공기. 




3월 말. 한국에도 눈이 왔다고 한다.


주말에는 취미로 열기구를 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여지껏 이처럼 불을 지른 듯한 노을은 본 적이 없었다. 


문득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가 떠오른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나는 괜히 막걸리 대신 냉수를 들이켰다.



또 보자. 노을아.




슈베칭엔 궁전


슈베칭엔 궁전은 하이델베르크 성 만큼은 아니지만 로컬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관광지라고 한다. 날씨가 좀 풀리면 제이미와 슈베칭엔 궁전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해 바람도 쐴 겸 혼자 산책을 다녀왔다.



* 슈베칭엔 성 혹은 슈베칭엔 궁전이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상당히 맘에 드는 조형물을 발견했는데, 아내의 반응은 좀 싱거웠다..



답사 때는 날씨가 추워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날이 좀 풀리고 나서 광장에 사람이 가득찬 것을 보고 놀랐다.


며칠 뒤에 날씨가 풀려서 우리는 가볍게 챙겨 입고 걸어서 슈베칭엔 궁전으로 갔다. 임시 숙소에서 궁전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슈베칭엔 궁전은 입장료가 있었다. 수중에 돈이 10유로 밖에 없어서 못 들어가겠구나 싶었는데, 매표소 직원 분께서 넓은 아량과 재치로 아내를 학생 요금으로 계산해 주셨다.


슈베칭엔 궁전의 역사에 대해 미리 좀 찾아보고 왔으면 좋았을 걸. 궁전의 운영시간과 입장료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는 없지만 그 외 다양한 언어를 지원한다.




매표소를 지나 정원을 따라 한참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모스크가 나온다. 


항상 쌍을 이루어 다니던 오리와 아랑곳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는 백조


성 안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었다.


고요한 호수에 비친 모스크


가장 큰 호수 반대편으로 정문이 보이고, 뒤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우리에게 첫 봄이 찾아왔다. :)